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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3:11-22) 2. 모세의 반응과 하나님의 대답(1)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대표가 되어 바로에게 가서 히브리사람들을 풀어주기를 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세의 반응은 어떠한가? 자격을 묻는 모세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곧바로 순종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먼저 자격을 묻는다. 격(格)의 뜻은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라고 나온다. 자격(資格)의 뜻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이다. 즉, 모세가 지금 하나님께 받은 명령에 대해 스스로가 검증하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르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 출애굽기 3:11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이 세상 어느 누..
출애굽기 3장(3:8-10) 1.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2) 모세를 부르신 내용으로 3가지를 생각해 본다. 먼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 모세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출애굽기 3장 8절 - 10절이다. 내용은 정리하면 간단하다. 1) 히브리 사람들을 애굽사람의 손에서 빼낸다. 2) 그들을 가나안 족속의 땅에 데려간다. 3) 이 일에 모세 너를 사용하여, 너를 통해서 이루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1)번과 2)번의 내용은 창세기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시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믿을만한, 신실한 분이심을. 그 분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각하자.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
출애굽기 3장(3:1-7) 1.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1) 출애굽기 3장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다. 성경의 여러 네러티브 가운데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이다. 주변에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한다는 사람들. 대체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가거나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고민을 하는 이들이라면 많이 읽고 묵상한 장면이다. 이러한 해석과 묵상이 잘못된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목회자나 사명의식을 가지고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사람들이 처음에 느끼는 것은 부담감이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지, 자격이 되는지의 여부를 자문하며 부담을 가지게 된다. 그런 이들에게 출애굽기 3장의 하나님의 부르심은 큰 위로와 도전, 그리고 사명감의 근원이 되는 장이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의 산 호랩에 모세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1절과 5절을 읽으면..
출애굽기 2장(2:11-25) 2. 모세의 모습, 이스라엘의 모습 출애굽기 2장의 후반부에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1)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이야기 2) 모세가 십보라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 3) 히브리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된 이야기 사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다. - 모세의 이야기 - 하나님의 이야기 왜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냐면, 모세의 이야기에는 당연하게도 모세만 나온다. 하지만, 히브리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기록한 부분에는 하나님이 등장하신다. 이 차이다. 주인공, 주어가 모세가 되느냐, 하나님이 되느냐의 차이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성경을 자세하게 보면, 이 부분이 상당히 큰 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출애굽기 2장 후반부의 짧은 열 다섯 구절 안에서도 이 차이가 나온다. 모세는 애굽에서 바..
출애굽기 2장(2:1-10) 1. 하나님의 인도하심 점점 더 거세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움직임 가운데, 2장에서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된다. 모세.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낸 자"이다. 왜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출애굽기 2장 1-10절까지 내용이 나와있다. 모세가 태어나자 바로의 명령에 따라 아들이기에 그를 죽여야 하지만, 부모가 그를 차마 죽게 둘 수 없어 그를 숨기게 된다. 하지만,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우는데, 그 상자가 바로의 딸의 눈에 보이게 되고 그녀가 모세를 데려가 키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1) 요게벳(모세의 어머니)의 임신을 주변에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났는데 어떻게 숨기겠나? - 만삭의 여인을 알아챌 수 없을 수가 있을까..
기독교는 세뇌인가? 세뇌: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특정한 사상, 주의를 따르도록 뇌리에 주입하는 일.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다. 약간 헷갈릴 수도 있겠다. 읽어보면, 우리가 하는 '교육'이 다 세뇌 같아 보이지 않은가? 특히나 앞부분,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는 것' 이것은 반드시 교육의 결과물로 나와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과 세뇌가 분명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다. 1) '특정한' 사상 2) 뇌리에 주입 공교육 현장은 1)번에 대한 부분을 상당히 경계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특정 정치 정당에 대한 찬반을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는 종교의 영역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넘어가자...
출애굽기 1장 정체성과 고난 출애굽기 1장의 시작은 이스라엘(야곱)의 족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수가 많아지고 강성하여 애굽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기록한다. 그 가운데 신기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 출애굽기 1:12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숫자가 늘어나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건축을 하게 하는 등의 무거운 노역을 시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더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사도행전의 초기와 매우 흡사하다.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어 베드로의 설교로 수 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오자 이스라엘의 지도층은 사도들을 압박한다. 협박한다. 하지만, 사도들은 담대하게 말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
성찬의 떡(빵)과 포도주 성찬식을 할 때, 빵과 포도주를 마시면서 예수님을 기념한다. 왜 그럴까? 간단한 대답은, 예수님이 기념하라 하셨기 때문이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누가복음 22:19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이어서 생각을 해야 한다. 무엇을 기념하라는 것인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식사시간들? 예수님이 건넨 음식의 종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를 기념하라"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예수님을 기념해야 한다. 예수님 자체를 기념해야 하지, 빵과 포도주를 기념해서는 안된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1. 빵과 포도주를 주님은 자신의 몸과 피라고 하였다. 맞다. 빵과..
사사기 3장 1-11절 (하나님의 시험, 최초의 사사) 가나안사람들을 모두 진멸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동화되어 물들어간다. - 사사기 2:11-13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도 사용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려 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 사사기 3:1 "남겨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 사사기 3:4 선한 일만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도, 악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하여 사용되어진다. 중요한 점은, 우리도 "선한 도구로 쓰임받는가, 악한 도구로 쓰임받는가"이다. 이스라엘은 이 시험 가운데서 가나안인들과 섞여 들어..
성경의 순서도 하나님의 은혜 창출레민신 수삿룻 삼상하 왕상하 대상하.... 어렸을 때, 교회 수련회에서 성경약어표를 외워야 밥을 줬었다. 그 때에는 '왜 이걸 굳이 외워야 하나? 그냥 어디 찾으라고하면 어디 찾아서 보면 되는거 아닌가?'하면서 뚱한 표정과 불만으로만 있었다. 막상 외우고나서는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사람이 이렇게 단순하다...;;;) 그 때 밥을 먹기 위해 외웠던 성경약어표가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저, 성경을 좀 더 빨리 찾는 용도(?)로만 여겼던 성경약어표.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성경의 순서를 살펴보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다. 유대인들의 성경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순서는 좀 다르다. 칠십인역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 우리는, 유대인들의 구약의 순서와 다른 구약의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