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특정한 사상, 주의를 따르도록 뇌리에 주입하는 일.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다.
약간 헷갈릴 수도 있겠다.
읽어보면, 우리가 하는 '교육'이 다 세뇌 같아 보이지 않은가? 특히나 앞부분,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는 것' 이것은 반드시 교육의 결과물로 나와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과 세뇌가 분명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다.
1) '특정한' 사상
2) 뇌리에 주입
공교육 현장은 1)번에 대한 부분을 상당히 경계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특정 정치 정당에 대한 찬반을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는 종교의 영역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넘어가자.
2)번에 대한 부분도 교육 현장에서 많이 변해가는 추세이긴 하다. 하나의 정답으로 가르치지 않으려는 부분이 1)번과 2)번이 맞물린 부분이다.
종교가 세뇌의 영역과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이슬람을 예로 들면,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알라를 섬기기 위해 태어난 것임을 가르침 받는다. "알라는 위대하다"(알라 후 아크바르)는 가르침 아래, 가장 숭고하면서도 천상의 세계로 곧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지하드'라는 알라를 위한 전쟁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 가르침도 받는다. 그리고 이슬람을 버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이라도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반역으로 인식하며 가르친다.(실제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분의 이야기)
이와 비슷한 구조를 힌두교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힌두교도로 태어나며, 다른 종교로 전향하지 않는다. 못하게 한다.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힌두교의 여러 신들 중 하나로 귀결시켜 타 종교를 해석한다. 이들에게는 예수도 '브라마의 몇 번째 환생의 모습'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1)번과 2)번이 같이 존재한다. 강압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떤가?
1)번을 본다면 기독교도 세뇌처럼 보인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이 주인공이다. 결코 다른 것이 중심이 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 중심이다. 때문에,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사상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 세계관을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을 기준으로 볼 때 '특정한 사상'이다.
이는 종교의 특징이다. 지금 말한 '종교'는 단순히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종교를 말함이 아니다. '종교'라는 말 자체가 "마루(일의 근원, 근본), 으뜸 종(宗)"에 "가르칠 교(敎)"이다. 단어로만 풀어 뜻을 말한다면, "가장 근본이 되고 근원이 되는 으뜸 되는 가르침"이 종교이다. 이를 조금 익숙하게 표현한다면,
①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② 삶의 방향성,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③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세계관,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즉, '특정한 사상'을 이미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아는 바, 이 특정한 사상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1차적으로 부모로부터, 2차적으로 존경하는 이들과 친구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최종적으로 사회의 규범적인 테두리(법, 제도, 그 나라와 사회의 도덕과 윤리 의식) 안에서 완성을 시켜 나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자신의 기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면서 산다. 그 기준으로 판단하며 산다.
아닌 것 같은가?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안 그런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간단한 예를 든다면, 부모와 자녀가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이 삶을 살아오면서 가르침 받아온 내용, 그리고 본인이 직접 삶을 살아내면서 정립한 자신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자녀에게 전수한다. 자녀에게 가르친다. 왜 가르치는가? 그 가르침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르친다.
"친구들과 가급적 싸우지 말아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 웃어른을 공경해라"
이러한 모든 가르침들이 자신 안에 종교(근본이며 으뜸 되는 가르침)이기에 그렇게 살아왔고, 이를 전수한다. 이는 종교의 특징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으뜸되는 가르침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것.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세뇌라 함은, 이에 대하여 강제성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이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를 중심으로 하는 김일성 일가 중심 사상으로 뭉쳐져 있다. 주체사상은 자주적 힘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것으로 귀결이 된다. 이 가르침이 강제적으로 작용하여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기독교는 악이며, 미혹하게 하는 책인 성경을 읽지 말라고, 잡아간다고 가르치고 전한다.
기독교는 하나님 중심사상을 가르치고 전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이다.
교회를 수십 년을 다녀도, 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어쩌면 잘못 가르친 탓도 있겠지만...
원 주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기독교는 세뇌인가?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 이슬람, 힌두는 태어나면서 자신들의 종교가 정해지고, 이를 벗어날 경우 죽임을 당한다.
태어나면서 기독교인인 이들을 모태신앙인들이라고 대부분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모태신앙인들 중 부모님의 강압에 의하여 교회를 다니며, 괴로워 미치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 줄로도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될까? 어찌어찌 고등학생 때까지는 부모의 강압에 의하여 교회에 나가기는 할 것이다. 아직 그들은 후견인이 필요한 시기이기에 억지로라도 참고 맞춰줄 수 있겠다. 그러나 99%. 성년이라고 하는 2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부모들도 어쩔 수 없어한다. 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을.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겠는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하여 아파트 주민 전체가 칼을 들고 협박을 하는가? 마을에서 가는 곳곳마다 예수를 거부한다고 음식도 팔아주지 않고, 물건을 팔아주지 않는가? 이슬람과 힌두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목숨을 건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어떤 부모님들은 유교적인 예와 질서를 최고의 가르침으로 여겨 자녀에게 전수하려 하지만, 자녀가 이를 받고 안 받고는 자녀의 선택이다. 믿는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최고의 가르침을 전해주고자 하는 부분으로 힘을 다해 가르치려 하는 부분이지만, 이에 대하여 거부하는 자녀를 죽이지 않는다. 못한다.
2) 과거에도, 지금도,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했다고 말한다.
성경의 사실성을 놓고 여러 이야기들의 갑론을박 중 성경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결정적 증거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 바울의 회심'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바리새파 사람으로 자라났고, 유대교의 가르침을 지극히 순종했으며, 그 가르침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목숨(기독교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불과 1주일도 안되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세뇌로 가능한 일인가? 철저하게 유대교의 사상 아래에 있던 자가 단 3일 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세뇌의 힘으로 된 것인가? 이에 대하여 바울은 로마 총독들 앞에서도 이야기한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행 26:25)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밝힐 수는 없지만, 2019년 현재 경상도에 있는 모 대학에 재학 중인 한 청년이다. 그는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온 이다. 북한에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도 죽고, 형도 죽었다. 동생은 할머니 댁을 가겠다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게 되었다. 아무런 삶의 희망도, 소망도 없던 그가 살고 싶어서 택한 것은 북한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정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온 그는, 한국에 와서도 교회는 가지 않았다. 이유는? 북한에 있을 때 워낙에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의 손에 이끌려 딱 1번. 교회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형이 죽고, 동생을 잃어버렸을 때도, 그 힘든 탈북의 과정에서 조차도... 나는 그날처럼 그렇게까지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예수님을 마음의 구세주로 영접했다.
북한에서 가르침을 받은 이다. 남한으로 와서도 교회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이다. 그랬던 이가 단 1번. 예배에서 예수님을 마음의 구세주로 영접했다. 이것이 세뇌로 가능한 일일까?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의 선택과 의견을 존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떤 때보다도 개인의 권리를 부르짖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권리에 합당한 대가를, 대가에 합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서 기독교는, 독선적으로 보인다. 꽉 막힌 답답한 집단으로 보인다. 잘못된 정치색을 가지고 있고, 경직된 조직문화와 가르침으로 온갖 부패의 온상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잘못하는 부분은 가슴을 치며 회개할 것이 맞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파해야 할 부분은, 예수님의 마음, 성경의 본질을 우리가 자꾸 왜곡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아파하며 엎드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올바른 본질이 드러나도록 더 배우고 살아내기에 힘써야겠다.
기독교는 세뇌가 결코 아니다.
교회는 증인들의 모임이다. 의인이지만 죄인인 자들의 모임이다.
울며 기도하며 좁은 길을 따라가고자 발버둥 쳐야 함을 지향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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