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행전 본론이 시작되고 나타난 두 번째 일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11절까지가 사도행전 전체의 서론이라면,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본론이겠다.
한데, 본론으로 들어가자마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이들이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1)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장 14절)
2) 맛디아를 열둘 가운데 포함시키는 것
본론의 첫번째가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일이라면,
두번째 일은 가롯유다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맛디아를 앉힌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일을 두가지나 한다.
그런데, 그 중 기도에 힘쓰며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이해가 어느정도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방법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니,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맛디아를 선출하는 것은 조금 물음표가 생긴다.
제자들은 왜? 굳이? 가롯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뽑은 것일까?
2. 새로운 사도의 조건
사실, 왜 가롯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려 했는가...라는 질문은 성경에서 답을 주지 않는다.
사도행전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추측을 한다면, 이스라엘에게 '12'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야곱의 12명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12지파, 마지막 계시록에 등장한 144,000명(12 x 12 x 1000) 등
이스라엘에게 12라는 숫자는 14(다윗의 이름) 40(40년 광야, 40일 기도 등) 등과 함께 특별한 숫자이다.
그래서, 12를 소위 '완전수'라고 불린다.
그 완전함에 빈 자리가 생겼으니 채우려 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성경의 내용은 아니다.
칼빈은 말한다.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라."
추측은 해볼 수도 있겠다만,
분명한 사실은 성경에서 말하고 근거하지 않은 추측을, 성경의 권위만큼 내세워서는 안된다.
때문에 말한다.
"왜 가롯유다가 사라진 것을 '빈 자리'라고 표현하며, 한 명의 제자를 더 뽑으려 하였는가?"
모르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죽고난 다음에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유를 모르기에 그냥 넘겨야 하겠는가? 그렇진 않다.
이곳에서도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맛디아를 뽑은 사건을 두고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나름의 근거는
- 아직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지 않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다는 것
- 하나님의 나라가 12명의 자리를 채워야 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 제비뽑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점
- 가롯유다의 빈 자리는 바울이 채웠다는 점 등등
이러한 이유로 맛디아는 사도, 제자라고 불리기 어려운 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사도행전 1장 26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누가는 분명하게 맛디아가 '사도에 포함 되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에, 인간의 실수도 기록을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는 다윗왕에 관하여도 여지없이 그의 치부를 기록한 것을 보면
성경은 인간을 높이거나 꾸미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에서 맛디아를 뽑는 일이 실수였고, 그마저도 여과 없이 기록했다?
그렇게 보기에는 이 이야기의 등장 타이밍이 1장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처음부터 사도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사람들의 신뢰를 깨는 일을 기록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26절에 분명히 기록한다.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갔다"는 것을.
이 부분에 있어서 다른 이들도 특별히 반대가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왜? 어떻게 반대가 없었을까?
그 이유는, 맛디아의 자격에 있다.
1)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로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이 땅에 계실 때 항상 같이 있던 사람(21절 - 22절)
2)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22절)
누군가는 말한다.
"맛디아는 사도행전 1장에만 등장하고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기에, 그는 그렇게 영향력이 없는 이였다. 애초에 예수님께서 직접 뽑은 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와 바울 외에는 특별히 언급이 크게 된 다른 제자들이 없다.
그리고, 누가는 분명히 맛디아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 행 1:21-22
즉, 맛디아가 예수님께 직접 지명 당한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시고, 가르침을 주시고, 이곳 저곳에서 전도하실 때,
그 때마다 함께 했던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일 때의 시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난 뒤.
조금은 수그러 들었을지 모르지만, 예수 믿는 자들에 대한 시선과 압박이 여전히 무시무시하던 시기이다.
그런데, 맛디아는 그 순간에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자이다.
사람들도 아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서로가 서로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구경꾼'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예수님의 제자로 남고 싶은 이'였는지.
맛디아는 예수님의 따르는 제자가 되고 싶어 했고,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본 자로서(22절)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를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천을 했다.(23절) 그리고 그가 뽑혔다.
비록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 가롯유다의 빈자리를 채운 사도가 된 것이다.
3. 나를 점검할 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다.
동시에, 그들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던 자를 뽑아, 사도의 수를 채웠다.
마치, 예수님의 빈 자리를 성령님으로, 가롯유다의 빈자리를 맛디아로 채워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가 새롭게 다져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기억하며,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1)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가?
2)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기도를 힘쓰고 있는가?
3)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는가?
4)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힘쓰는가?
맛디아는 분명 예수님이 직접 뽑으신 제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사도로 뽑혔다.
만약 열한 제자들이 자신들이 "예수님이 직접 뽑은 제자이기에 특별하다!"는 우월의식이 있었다면
맛디아를 뽑지 않았을 것이다.
맛디아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고, 증언하고자 하지 않았다면,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인 마음들을 내려놓은 열한 제자.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붙들고 쫓아온 맛디아.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들을 사용하셔서, 새로운 사도를 세우셨다.
비록, 맛디아는 이후에 큰 기록이 없다.
하지만, 상상해볼 수 있겠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더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며, 자신이 '사도'라는 정체성을 거룩한 부담으로 여기며,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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