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 성경을 읽는 눈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읽느냐에 따라 조금은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주제로 읽는 분들도 계시고, '땅'을 주제로 읽는 분들도 계신다.
틀린 것이 아니라, 풍성한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나라', '언약', '임마누엘', '사랑'을 주제로 읽는다.
실상, 성경은, 각각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있으나,
내가 부족하여 따로 생각을 하는 것이고, 또 서로서로 간섭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주인이시고, 그렇기에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다.
죄로 인해 분리 되었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셨고
그래서 언약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어가신다.
어쨌든, 출애굽기에서도 등장하는 개념은 '임마누엘'이다.
사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임마누엘은 나타난다.
맨 처음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은, 아담과 '함께 동산을 거닐며 쉬시는 것'이었다.
죄로 인해 인간과 분리되셨지만, '에녹과 동행'하셨다. 족장들과 함께 했다.
출애굽기에 와서는 모세와 동행하셨고, '성막으로 이스라엘과 동행'하셨다.
왕국시대에 이르러 '성전에서 함께'하셨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임마누엘을 인간의 몸으로 이루신 후...
승천하시고 난 뒤 성령님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임마누엘' 하신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신 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볼 때.
출애굽기가 성도의 구원의 서정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큰 목표와 방향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우리가 애굽의 법칙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주어진 목표라면.
어떻게 그 일을 이룰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일을 이루는 방법을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이루신다.
- 성경인물들에게 꼭 따라다니는 기록
성경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꼭 함께 따라오는 문구가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성경 기자들은 꼭 기록한다.
요셉,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겔, 이사야, 엘리야, 엘리사.....
모든 성경 인물들의 이야기 가운데에 반드시 등장하는 기록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하시지만, 사람을 사용하신 것뿐, 그 사람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하나님 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뿐임을 나타낸다.
출애굽기 3장에서도 모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였다.
모세에게 사명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며 가라고 하셨지만, 그 모든 일의 근간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빼면 내용의 이해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시내산에서 그들이 받는 율법의 내용은, 그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기록한 제사의 방법, 배상법, 음식법 등등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갖춤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구별되시기에) 그 백성들도 거룩하게 되어(구별되어)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해야지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고, 가나안에서 살 수 있다.
이것을 모세는 히브리사람 누구보다 깊게 깨달았다.
그래서 출애굽기 31장의 금송아지 사건 때, 하나님이 단호히 선포하신 말씀에 간곡히 매달렸던 것이다.
"내가 너희의 조상들과 약속한 것이 있기에 너희를 가나안에는 들여보내겠지만, 난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
".... 하나님.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면, 저도 가나안에 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은 저와 저의 백성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랑 고백이지만, 이것은 모세의 진심이었다.
비록 지금 광야에 있지만
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하나님 없이 풍요로운 땅에 사는 것보다 더 좋다고 고백한 것이다.
환경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택했다.
이와 똑같은 고백을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한다.
밧세바 사건 이후 나단 선지자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받고 밤낮 금식하며 기도할 때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고백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왕의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모세의 고백과 다윗의 고백.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좋게 여기셨다.
그리고 모세는,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끝까지 붙들었다.
- 임마누엘을 원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
성막이 언제 지어지는가? 모세의 이 기도가 있고 난 다음이다.
다윗의 이 고백과 회개 후에, 그 아들이 성전을 짓게 된다.
광야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임마누엘을 사모하자,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셨다.(성막을 짓게 되었다.)
실상 가나안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가나안이 주어지지 않는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증명되지 않는가?
구원의 서정에서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당연한 결과이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에게
가나안이라는 하나님 나라는 허락되지 않는다.
현재 내 형편과 처지가 '광야냐, 가나안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이 차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사단의 세력(애굽의 법칙과 영향력)이 등장하는 출애굽기.
그 사단의 세력을 이겨내고, 견디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임마누엘이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사족 1.
Q. 그럼 출애굽기 1장에서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 하나님이 동행하시지 않은 건가요?
A.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이시다. 마치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 하나님이 출애굽기 2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마치 하나님이 잊고 있다가 "아차!! 맞다!! 아브라함 후손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창세기에 분명하게 나온다. "아직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았다."(창 15:16)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큼 차지 않았기에 기다리시는 것이지, 히브리 사람들을 잊었다가, 찾아오신 것이 아니다.
사족 2.
Q. 그럼 가나안 족속들도, 애굽 사람들도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위해 만드셨나요?
A. 결코 아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회개를 하나님은 기다리셨다. 대표적인 예가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다. 심판하시려 하실 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인 열 명이 있으면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하신다. 요나서의 '니느웨 회개'도 마찬가지다.
애굽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것이 맞다. 하지만, 읽어보면, 바로 스스로가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하나님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이 주관하시지만, 결코 하나님 마음대로 휘두르시지 않으시고, 그에 합당한 대가가 되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기다리시되, 돌아오도록 외치시면서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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