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과 하나님의 대립
- 출애굽의 목적
출애굽기를 성도의 구원의 여정에 비유한다.
애굽에서 종 된 히브리 사람의 모습 =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세상의 종 된 모습
홍해를 건넌 사건 = 세례(침례)를 받음
광야의 시간 = 성화의 과정
가나안 입성 = 천국 입성
단순히 신학자들의 자기 주장이 아닌, 고린도전서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출애굽을 해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출애굽의 목적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맞다. 틀리지 않았다. 궁극적 목적지는 가나안이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3장에서 또 하나의 출애굽의 목적이 나오는데, 그것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출 3:12)
실제로, 모세는 바로 앞에서 출애굽의 목적을
'가나안이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러 간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러 간다'고 한다.(출 5:1)
단순하게, 모세가 가나안으로 간다는 말을 숨겼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 구원의 서정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
출애굽기는, 성도의 구원의 서정으로 보아도 된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서 우리는, '구원의 서정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겠다.
그리고 출애굽기를 보면, 출애굽기에서는 창세기와는 다른 치열한 '대립'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바로, 애굽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만 볼 수는 없고, 그리스도인 더더욱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롬 11:36)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대립하고 있으며
성경도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권세를 대비해서 말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 속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분리와 구별됨(거룩)을 40장에 걸쳐 말하고 있다.
그 대립에서 히브리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서정으로 해석해도 맞는 부분이다.
히브리어 '아바드(עבד)'의 뜻은 '일하다' '섬기다'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 단어는 '예배하다'의 뜻도 있다.
히브리 사람들은 출애굽기 1장에서 바로를 '섬겼다.' 바로를 위해 '일했다.'
그런 그들이 출애굽기 40장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며 하나님께 '예배했다'
애굽의 것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옮겨졌다.
애굽을 '섬기던(예배하던 - 아바드)' 모습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섬기는 - 아바드)' 모습이 된 것이다.
애굽과 하나님의 분명한 대립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을 어떻게든 하나님 편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마음이 들어 있다.
(여호수아서 마지막에 가면 이 대립을 더 분명히 한다. "너희는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정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 수 24:15)
애굽을 섬기던 모습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옮기는 것.
이 작업을 하실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시내산 예배(언약)'인 것이다.
- 왜 시내산 예배(언약)가 필요한가?
시내산에서는 중요한 두 가지 일이 진행된다.
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새로운 언약이 민족적 단위로 이루어진다.
2)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다.
1)번을 통해 히브리 사람들의 정체성(존재)을 애굽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새롭고, 분명하게 하며
2)번을 통해 하나님의 종이 된 이스라엘의 삶의 모습, 가치관, 사고방식, 철학, 문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종답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애굽의 신들과 다르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예배해야 할까?
우리나라가 36년간 일본 아래 있고, 광복이 7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잔재들이 있다.
'오라이' '다라이' '스끼다시' '기스' 등등의 단어만 보아도 느껴진다.
재미동포 3세, 4세들. 그들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이방의 나라일까?
아니다. 그들에게 미국은 모국이요, 고향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미국이요, 친구와 가족들이 있는 곳이 미국이며,
자신의 미래진로와 직장, 인맥, 문화 모든 것이 미국에 있다.
그들은 미국이 고향이다.
그들은 그들의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에게 한국에 대해 들었을 수 있지만
그들의 모국은 미국이다.
이렇게 되는데 100년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430년 간 애굽에서 종이 었다.
그들에게 애굽은?
비록 종살이를 하였을지언정.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애굽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문화가 애굽의 문화요, 교육, 사상, 철학 모든 것이 애굽의 것이 편하다.
옷 입는 것과 먹는 것, 마시는 것이 애굽의 것들이다.
요셉의 안배로 고센이라는 변방에 있었지만, 그들은 애굽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는
긴 시간을 애굽에 있었다.
그러한 히브리 사람들이 가나안에 곧바로 들어간다.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려 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겠는가?
당연히 애굽에서 신을 섬기던 모습으로 섬기지 않겠는가?
그것들이 "잘못된 것이라 알려주는 법"을 정하여 기준을 정하고 깨달아 변화하는 것.
이것이 없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물론 아무리 이렇게 준비해도 타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사사기를 읽어서 알고 있지만...)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출애굽기 31장의 금송아지 사건이다.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자, 이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을 '만들라'라고 한다.
애굽의 사고방식이다. 이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간략하게 설교적으로 적용한다면,
교회를 다니면서,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하나님의 법칙에서 나오는데
세상의 법칙으로 접근했던 것은 아닐까?
-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생각해야 할 점
출애굽의 궁극적 목적은 가나안 입성이 맞다.
이 큰 방향성을 잊으면 안 된다. 잊으면 가데스 바네아 사건과 같이 된다.
"우리는 못 들어간다."라고 하자, 정말로 못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가나안 입성을
1) 히브리 사람들의 힘만으로 할 수 없다.
2) 시내산 과정 없이 가나안에 들어가도 문제가 된다.
큰 방향성과 목적지는 가나안 입성(천국 입성)이 맞다.
하지만, 그 궁극적 목적지를 위해 반드시 우리는 시내산에 가야 한다.
애굽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취해야 한다.
애굽(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엡 2:2, 벧전 2:16)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고 분명하게 해 주셨고
- 우리에게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사는 법을 주셨으며(그것도 아주 자세히)
-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하시지 않으실까?
성도의 구원의 서정.
출애굽기는 이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낸 첫 번째 책이며,
하나님과 세상의 대립을 분명하게 나타낸 책이고
그 가운데 우리를 변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난 책이다.
이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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