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사람들을 모두 진멸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동화되어 물들어간다. - 사사기 2:11-13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도 사용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려 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 사사기 3:1
"남겨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 사사기 3:4
선한 일만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도, 악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하여 사용되어진다. 중요한 점은, 우리도 "선한 도구로 쓰임받는가, 악한 도구로 쓰임받는가"이다.
이스라엘은 이 시험 가운데서 가나안인들과 섞여 들어간다.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 사사기 3:6
마치 창세기 6장의 노아홍수 시대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통혼을 하는 모습.
창세기에서 홍수 심판의 이유는 두가지다.
1) 죄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
2) 그 발단이 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통혼
사사기 3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결과는 가나안의 딸들과 통혼하는 것이다.
가나안 인들과 섞여 들어가는 것이 왜?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와 개념들은, 모두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 관계된다.
그 중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직접적으로 민족 단위' 언약을 맺으시면서 요구하신 사항 중 하나가 거룩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레위기 11:45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이다.
그리고 거룩은 '분리'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죄와 양립될 수 없고, 공존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 성품. 거룩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과 분명한 관계성을 확립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거룩'이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큰 죄악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인들과 통혼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큰 죄악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통혼은, 단순히 결혼으로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닌, 그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한다.
사람의 딸들의 문화. 가인의 문화가 셋의 계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하나님이 경계하신 것이었다.
가나안의 문화. 바알과 아세라와 아스다롯과 몰록의 문화가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결국,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들이 가나안의 딸들과 아들들과 맺어짐으로, 이 우상에 대한 신앙이 이스라엘에 들어왔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 사사기 3:7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통혼이 가져올 결과를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셨다. 그래서 막으시려 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한 문장은 실로 무겁고 큰 일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종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 인해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출애굽 시킨 이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들의 근간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모를 버린 것이다. 국적을 포기한 것이다.
후에 나타나는 많은 선지자들이 선지서를 기록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 가운데 꼭 들어가는 표현이 있다.
"나는 애굽에서 종된 너희를 건져낸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뿌리를 기억하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하나님으로부 있음을 잊지말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여기 있으니
어서, 돌아오라는 부르심이다.
통혼하고, 혼합하고, 뒤섞여서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사사 - 옷니엘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첫번째 사사가 등장한다.
갈랩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다.
옷니엘의 이야기가 나오는 이 부분은 사사기의 표본과 같은 모습으로 기록된다.
1) 이스라엘이 타락한다. - 7절
2)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신다. - 8절
3)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 9절
4) 옷니엘이(사사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 10절
5) 이스라엘에 평화가 온다. - 11절
전형적인 사사기 이야기 구조가 시작되는 가운데
옷니엘이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기록된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사사기 3:10
사사가, 사람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사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였기에, 자연법칙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와 뜻이 일부분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들이 만든 제도도 하나님이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자연법칙으로 보았을 때 힘 있는 자, 사람들의 제도적 합으로 세워진 자
이러한 사람이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임하는 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회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사회적 합의로 세워진 자가 겉으로는 리더이지만,
하나님께서 리더로 인정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의 제도를 통해서도 일하신다. 함부로 제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자신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질서에 강력하게 부딪치기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마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중요하다.
이 마음이 없이 리더의 자리에 있어도 문제고, 이 마음만 가지고서 무조건 기존의 질서에 부딪치는 것도 문제다.
옷니엘이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이 마음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음의 열정을 충동질하신 것이 아니다.
가나안과 섞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싸운 옷니엘의 마음에 하나님이 부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보인다. 무려 40년 간의 평화가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다.
마치 내 모습과 똑같다.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힘들 때에게 기도하고, 힘듦이 가시면 은혜를 잊는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하나님, 하나님의 영이 저를 다스리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주세요.
가나안과 통혼하고 있는 이 마음이
하나님의 영에 붙들리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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