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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선반/사사기

사사기를 읽으면서 2 (사사기 서론 1장과 2장, 신앙의 전수, 순종)

1. 사사기 1장과 2장의 내용

사사기 1장에서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가 나온다.

분명 여호수아에서 정복을 다 마친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데, 사사기에 다시 가나안 정복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성경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을 점령하는 큰 전쟁들(가나안 부족 연맹과의 전쟁)은 모두 승리로 마쳤지만,

이스라엘 각 지파가 점령해야 할 땅에서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1장에 등장하는 전쟁은 모두 '지파별로 치른 전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눈 여겨볼 포인트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모든 지파가 가나안 족속들을 다 몰아내지 않는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이며

동시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이루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큰 전쟁은 모두 승리하였는데, 작은 전쟁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그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다.(삿 1:19)

둘째, 그들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였다.(삿 1:28,-35)

 

본래 가나안의 전쟁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기적으로 승리했다. 여리고가 어떻게 무너졌는가?

그런데, 가나안인의 철기 문물을 보고 겁이 나서 그들을 진멸시키지 못한다.

광야의 힘든 삶에서 정착하며 살아가려다 보니, 좀 더 편해지고자 노예를 부리려 진멸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재판을 하시고, 그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신다.(사사의 역할 삿 2:1-5)

 

이것이 왜 중요한가?

이스라엘이 끊어내지 않은 가나안 족속으로 인해 가나안의 문물이 들어왔다.

이들이 섬기는 심들과 그 신을 섬기는 방법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왔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기적과 인도하심으로

애굽의 방식(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게끔,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는데(하나님의 방식)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게 된 모습이다.(다시 세상으로 돌아감)

 

이 때,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모두 보고 경험한 여호수아가 죽는다.(삿 2:8)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감사하던 세대가 사라져 버렸다.(삿 2:10)

 

그러자,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사기 기자는 요약하여 설명을 한다.(삿 2:11-2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사사기 2:13)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그들이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사사기 2:15,17,19)

 

 

2. 단절된 신앙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 부분을 좀 생각해볼 것은, 분명히 이스라엘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 아닌가?

 

출애굽기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를 생각해보자.

아론은 히브리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이 금송아지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다"라고 말한다.

 

즉, 전혀 다른 새로운 신을 말하고, 여호와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에 대해 잘못 알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혼재', '혼합'된 상태를 말한다.

순수한 상태가 아닌 혼합된 상태. 이것을 성경은 부정하다고 한다.

사사기 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호와'를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여호와'' 아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아는 상태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어려울 때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이것은 여호와를 잊었거나, 없앤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사사기 2장 10절에서도 표현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더라"이다.

여호와를 모른다는 의미가, 우리가 아예 모르는 사람에 대해 인식하는 것처럼(모르는 사람을 인식하나? 말이 이상하다.)

아예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것을 사사기 기자는 여호와를 '모른다'라고 기록했다.

 

율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 11:45)

 

거룩은 분리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이 거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과 분리되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과 하나님을 혼합하여, 혼재하여 섬기고 있다.

 

 

3.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에 적용

동방의 이스라엘이라 불리던 대한민국이다.

일본의 지배 아래 있던 1907년에 평양 대부흥운동을 경험한 대한민국이다.

한국 전쟁 당시 해운대 백사장에서 회개하며 구국기도하던 대한민국이다.

1970년대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집회를 시작으로 C.C.C가 이어받아 여의도에서 100만 명이 모여 회개하던 대한민국이다.

어려운 순간에 '기도'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평소 기도와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기도하지 못한다.

무조건 크고 많이 모이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식하게 기도하던 우리 선배들의 신앙의 모습을 닮긴 해야 할 것 같다.

 

무식하게 기도했기에 오늘날 여러 문제가 생겼다고 평한다면,

이러한 여러 대형집회로 인해 오늘날 여러 문제가 생겼다고 평한다면,

그러한 부분들은 반면교사로 삼자.

 

하지만, 우리 선배들이 가졌던 기도에 대한 소망함. 말 그대로 신앙(믿고 바라는 것)에 관한 것은 이어가고 싶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하신 일들을 잊지 말자.

 

그리고 개인에게 해 주신 일들도 잊지 말자.

처음 주님이 만나주신 날.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열정이 일어나던 그 순간.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신 그 마음.

 

잊지 말고 기억하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출애굽 세대는 출애굽의 시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가나안 정복 세대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르며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두 세대가 체험한 기적의 공통점은 '순종'이다.

 

출애굽기 후반부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들이 나타나며 35장 이후에 성막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나타난 내용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했다."라는 기록이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장면도,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장면도.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때 일어났다.

 

여리고를 점령할 때도, 가나안 북부 지역을 점령할 때에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순종하였다.

 

다음 세대에게 신앙이 전수가 되려면

 1)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올바른 앎(로고스, 레마 둘 다)이 있어야 한다.

 2) 그에 따른 순종이 필요하다.

 3)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을 '먼저' 경험한 세대가 되어야 하고

다음 세대는, 그 세대의 상황 속에서 이 일들을 도전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유초등부는 유초등부의 때에

중고등부는 중고등부의 때에

청년은 청년의 때에

장년은 장년의 때에

 

대학 입시와 믿음의 혼재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대학 입시가 되도록.

결혼과 취업 가운데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혼재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서 취업도 결혼도 이루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