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사기는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인가?
- 사사
사사는 "재판을 행하는 자", "판결을 내리는 자", "다스리는 자"라는 뜻이다.
사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사사기이며, 21장이라는 분량 안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성경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라고 표현한다.
아직 왕이 없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자리.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사사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이들이었고, 사람들을 구원해내는 이들이었다.
이러한 영웅적 행적이 기록된 사사기. 그렇다면 이 책은 희망적인 책일까?
- 영웅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검색을 해보면, 영웅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이 정의에 비추어 보면, 사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웅"이라고 불려도 될 것 같다.
민족의 어려움 가운데 등장하여, 그 어려움의 근원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은,
그들이 "믿음의 영웅인가?"라는 질문이라면, 여기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정말로 믿음의 영웅인 사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믿음의 영웅이 아닌자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될 수 있는가?
이 또한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는 것이다.
-사사기가 흘러가는 방향
사사기는 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 행적이 자세히 묘사된 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짧게 짧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사사도 있다.
어렸을 때에는 재밌었다. 사사기 네러티브가 멋진 영웅들의 이야기이기에 어린 시절 기드온, 삼손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라.
왜 영웅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맞다. 난세를 평정하고 많은 이들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었기에 영웅이라 불린다.
그러면, 사사기에 영웅이 많이 등장했다는 말은?
난세라는 말이다. 혼란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극적인 영웅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그 시대는 더더욱 난세요, 혼란한 시대라는 뜻이다.
사사기는 1장에서 21장으로 갈수록, 더더욱 혼란과 타락이 깊어져 가는 책이다.
사사가, 사사로서 온전히 행하지 않는 이들이 뒤로 갈수록 등장하는 것이 증거다.
평안의 시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이 증거다.
17장에 가서는 모세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맺으며 약속한 언약의 관계, 율법의 행위가
얼만큼이나 박살이 나는지 묘사되어지고 있다.
사사기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사기는 밝고 희망찬 책이 아니다.
사사기는 점점 더 어둠을 향해 나아가는 책이다.
2. 사사기의 구조
사사기에서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꼭 5가지 단계를 거친다.
1) 타락 -> 2) 하나님의 징벌 -> 3) 하나님께 부르짖음 -> 4) 사사를 통하여 구원 -> 5) 평안
이 5단계가 계속 반복이 된다. 예외 없이 모든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이 반복이다.
그런데, 위에 잠깐 쓴 것처럼. 5)번 평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즉, 5)번 평안에서 1)번 타락으로 가는 속도가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사들의 모습도 점점 타락해 간다.
사사 개개인의 타락의 정도도 있지만, 사사들의 수준이 점점 낮아진다.
그리고, 사사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극적으로 수준이 낮은 사사들에 대한 묘사를 더 많이 한다.
누구인가?
기드온, 입다, 삼손 이다.
사사기 6장에 등장하는 기드온은, 분명히 300명의 사람들만으로 미디안의 13만명을 이겼다.
엄청난 이 일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며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기드온은 거절한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으로 짓는다.
그리고 에봇을 만드니... 이 에봇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시 타락한다.
10장에 등장하는 입다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다.
명백하게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제사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사다.
13장에 등장하는 삼손은 뭐라고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하다.
나실인(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사람)으로 태어나고, 길러졌음에도 블레셋 여인들을 사랑했고
하나님이 신력(神力)을 주셨으나, 그 모든 힘을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
마지막 순간의 그의 기도의 내용도, 이스라엘의 사사로서의 기도라기 보다는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17장에 이르러는
제사장을 자신들이 멋대로 결정하여 세우고, 하나님의 율법과 전혀 관계 없는 제사를 추구한다.
사사기는 점점 더 타락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내 모습이다.
하나님께 어려움이 있을 때는 구하나, 평안이 오면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대로 행하며 산다.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기"(히 12:4)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죄에서 자유"하기 위하여 삶의 질서를 잡기 보다는, "죄 안에서 자유"하기 원하고 그렇게 산다.
그게 내 모습이다.
왜?
"날마다 내가 죽지"않고, 내가 나의 주인되다보니...
"자기를 부인"하여, 내 주권을 부인하여, 하나님의 주권이 내 삶을 다스리게 하시기 보다는
여전히 내가 주인이라서 그렇다.
재판의 판결을 내리는 자(사사)가 나인 것이다.
3. 이스라엘의 참된 사사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이 타락이 반복되어지며 더 심각해지는 이유를 마지막에 설명하고 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 사사기 21:25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고 한다.
바로 뒤에 등장하는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은 이 부분을 가지고 사무엘에게 찾아가
"우리도 왕을 달라"라고 부탁(협박)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진정.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는가?
이스라엘에게 올바르게 "재판을 행하며, 다스리는 자"(사사)가 없었는가?
온전하고 완전한 사사가 있었다.
여호와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사사를 버리고 우상을 쫓아갔다.
그 사사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우상의 판결을 쫓아갔다.
왜일까?
그게 좋아보여서.
'자기 눈에 그게 좋아보여서', '자기 생각에 그게 옳다고 여겨져서'
그래서 여호와라는 사사의 판결을 따라 살기보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쫓아갔다.
그래서, 참된 사사이신 여호와께서. 판결을 내리셨다.
벌을 주셨다.
그 벌을 선고받고, 그 벌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그 벌에서 건져낼 이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
사사도, 하나님이 보내주셨기에 영웅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사사들과 함께 해주셨기에(임마누엘) 그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지, 그들의 능력이 아니다.
그런데 사사도, 이스라엘도...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
모든 이들의 가장 큰 관심은 "자신의 행복"이고,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TV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하여 기존 질서에서 당연히 여기던 것에 반기를 들고 싸우는 일을 영웅적인 일로 묘사하고 있다.
모든 기존의 질서들이 옳은 것은 분명 아니다. 그로 인한 피해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생겼다고 해서 그 질서가 완전히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사사기가 더 마음에 다가온다.
그리고
그래서 사사기 가운데에 나타난, '참된 사사이신 하나님의 자비'에 더 감사하게 된다.
사사기는 어두운 책이다. 인간 사사들과 이스라엘만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참된 사사이신 하나님을 보면 사사기는 희망의 책이다.
아무리 타락하고, 하나님에게 등 돌려도.
다시 불러주시는 은혜의 책이다.
'성경 이야기 선반 >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3장 1-11절 (하나님의 시험, 최초의 사사) (0) | 2019.10.21 |
---|---|
사사기를 읽으면서 2 (사사기 서론 1장과 2장, 신앙의 전수, 순종) (0) | 2019.09.16 |